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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깐한 통장 개설…정보관리는 깜깜

엔터미디어스 2016-04-05 (화) 01:50 8년전 497  
[한겨레] 동호회원 개인정보 다 내라니…

“대포통장 방지” 지난해 규정 강화
동호회 회칙·명부 등 모두 제출해야
원하지 않아도 개인정보 넘어가

은행, 정보 활용·보관 설명 안해줘
정보관리 방식도 은행마다 제각각
불안감 지적에 금감원 “개선책 마련”


00554749201_20160405_99_20160404205511.J게티이미지뱅크
회사 동호회 회비를 관리하려 새 은행 통장을 만들려던 직장인 박아무개(33)씨는 동료들 앞에서 진땀을 흘려야 했다. 은행이 계좌 개설을 까다롭게 하면서 회원들의 이름은 물론 전화번호, 전자우편 등과 같은 구체적인 개인정보를 요구해 서류를 준비하는 데 동료 회원 중 몇몇이 “내 개인정보가 어떻게 쓰일지 알고 넘겨주느냐”며 께름칙해하는 반응을 보여서다.

박씨는 “보통 신용카드 등을 만들 때는 개인정보 수집이나 이용, 활용 등과 관련한 내용이 담긴 서류에 서명을 하게 하는데, 이번에는 그런 절차도 없고 은행 직원들 역시 이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아 답변하기가 난감했다”고 말했다.

4일 <한겨레>가 주요 시중은행들을 대상으로 신규 계좌 개설 요건을 까다롭게 한 이후 제3자 정보 등 추가로 제공되는 각종 개인정보 관리·보호 실태를 파악했더니, 이와 관련한 지침이나 규정이 따로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금융감독당국도 마찬가지여서 금융소비자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에 이용되는 대포통장을 없앤다는 취지로 지난해부터 계좌 개설 때 금융거래목적 확인서와 함께 신분 확인 절차를 강화하도록 했다. 최근에는 자금세탁을 방지한다며 자금 출처 등도 확인하게 하는 등 절차는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증빙서류를 받을지는 금융회사가 알아서 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은행이 요구하는 각종 증빙서류에 담긴 개인정보가 과거보다 훨씬 많아졌고, 특히 민감한 제3자의 정보가 담긴다는 점이다. 동호회비 관리용 통장을 만들려면 명의인 외에 모든 회원들의 구체적인 개인정보를 모두 내줘야 한다. 아르바이트 급여를 받기 위한 통장 개설 때도 사업주와 관련한 정보가 담긴 서류를 제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수집된 개인정보의 보관 방법이나 기간은 은행별로 제각각이고, 이를 고지하는 일도 없다시피 해 소비자들은 막연히 은행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실제로 ㄱ은행은 증빙서류를 받아 한 곳에 보관한 뒤 5년이 지나면 서류를 폐기한다. ㄴ은행은 서류를 스캔해 전자문서로 보관하고, 받은 서류는 1년 뒤 폐기한다. 전자문서는 계좌가 해지되면 5년 뒤 삭제한다. 은행 관계자는 “규정에 따라 정보를 관리해 유출 등의 우려는 없지만 이를 창구에서 설명하지는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정보가 소비자들의 동의 없이 마케팅 활동에 활용되는 등 부작용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김보라미 변호사는 “금융회사가 수집하는 개인정보는 자의적 활용을 막을 수 있도록 수집 목적에 따라 보관 기간·방법 등을 감독당국이 따로 정해야 한다.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는 “미처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라며 “애초 통장 개설 요건을 강화한 취지를 넘어서 은행들이 과도한 개인정보를 요구하면서 빚어진 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민원이 늘고 있어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 중인데 여기에 개인정보 보호 장치도 함께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승헌 기자 abc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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