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도보통지』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념판
정조는 왜 친위부대이자 백성을 위한 군대인 장용영을 창설했는가!
1997년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우리 사회 전반에서 정조시대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이러한 현상은 역사학계에도 영향을 주어 정조의 위민사상과 개혁정치, 그리고 그가 추진했던 자주적 국방개혁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2017년 10월 27일, 『무예도보통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비록 북한이 단독으로 신청한 점이 아쉽긴 하지만, 이것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 무예와 군사기록물에 대한 책 내용이 세계적으로 독창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조는 왜 ‘장용영’이라는 친위 군대를 만들고, 『무예도보통지』를 만들었을까? 우리는 정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널리 알려진 정조의 8일간의 화성행차는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위한 것보다 사도세자로부터 시작하여 정조가 준비해온 군사적 능력을 마음껏 과시하는 게 숨겨진 주목적이었다. 장용영외영 군사들의 일사불란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신무기를 선보임으로써 화성유수부가 강력한 군사도시임을 입증했다. 또한 화성 내에 거주하는 백성들과 함께 훈련을 함으로써 민보(民堡), 즉 백성이 국방의 보루가 되는 새로운 개념을 보여주었다.
결국 정조가 화성행차에서 보여준 일련의 군사훈련은 다른 군영으로 하여금 장용영외영을 두렵게 만들었다. 더불어 이는 자연스럽게 정조가 추구하는 국방개혁에 대한 반대를 일소하고, 향후 외세에 대한 군사적 방어 및 공격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백성이 없는 군대는 의미가 없고, 군대가 없는 백성은 위태롭다. 그래서 백성과 군인은 하나가 되어야 하고,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러므로 백성과 군인, 그리고 관료들이 합동으로 하는 군사훈련은 가장 이상적이다. 이것이 정조가 화성에서 백성들과 함께 군사훈련을 한 진짜 이유다. 그리고 이는 장용영이 조선 최강의 군대로 평가받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